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미쳐야 한다 | 한유정 할리우드 미술총감독 | 동기부여 도전 강연 강의 | 세바시 629회 | (Kor, Rus)

(박수와 환호)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한유정입니다 할리우드 미술 총감독 한유정입니다 오늘 제가 얘기를 할 것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미쳐야 한다' 인데요 제가 할리우드에서 같이 일했던 분들 사진들을 몇 개 모아 봤습니다 벤 스틸러, 그 옆에 스탠 리 같은 경우는 여러분들 좋아하시는 '스파이더맨', '엑스맨' 이런 것들을 다 창조하신 분입니다 배우보다 더 훌륭하신 분이죠 그리고 제임스 코번 '쥬라기 공원'의 제프 골드브룸 또 클리프 커티스 같은 사람은 '다이하드' '트레이닝 데이즈' 이런 데 출연 했고 여러분들 잘 아시는 로스, 우디 해럴슨, 앤디 가르시아 이런 분들과 같이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제가 우연한 기회에 무대 디자인이란 분야를 중학교때 들었는데요 우연히 들은 그 단어 한 마디 거기서 오는 강렬한 느낌 하나만으로 그 자리에서 제 미래를 결정해 버렸습니다 무대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근데 그렇게 결심을 하고나서 막상 돌아보니까 무대 디자인에 대해서 아는 사람도 없고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알음알음 어떻게 안 게 '미국은 무대 디자인이 굉장히 발달돼 있다' 이 정도 얘기만 들었어요 그래서 그 날부터 저는 '이제 무대 디자인을 하러 아메리카에 가야겠다' 이렇게 해서 아메리카에 꽂혔습니다 그래서 막상 가려고 보니까 부모님이 저를 보내주셔야 되잖아요 그래서 부모님을 열심히 졸랐어요 그랬더니 중학생 여자애가 미국을 가겠다는데 그것도 혼자 당연히 반대하셨죠 저희 아버지는 또 굉장히 보수적인 분이셨거든요 근데 반대를 하셨지만 저는 막무가내로 막 조르니까 저희 아버지가 저를 설득하신게 "일단은 대학교부터 가봐라" 그래서 "저 대학교 들어갔습니다, 저 보내주세요" "대학교 들어갔으니까 졸업은 해봐라" "졸업 했습니다 저 좀 보내주세요" 그랬더니 저희 아버지가 "졸업하느라 수고했다 이제 시집가서 남편하고 유학가라" 이렇게 바로 결론이 나셨어요 그래서 그때 제가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고 또 실망을 하여서 제 친구들은 이제 졸업해 가지고 열심히 취직하겠다고 그럴 때 저는 포켓 당구에 열심히 미쳐서 당구만 치러 다녔습니다 그 옆에 카페에서 카페 서빙하면서 돈 조금 벌어 가지고 당구 치러가고 그 생활을 제가 한 6개월을 반복을 했어요 근데 반복을 하다 정말 어느 날 갑자기 턱 든생각이 있었는데 '근데 내가 미국을 가려면 왜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야 되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근데 생각을 해보니까 답이 하나였어요 제가 자립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근데 그러면 내가 자립 능력을 키우면 되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니까 갑자기 정신이 번쩍 나기 시작하더라구요 그래서 그 길로 포켓 당구와 카페를 그만두고 '이제 어떻게 하면 취직을 할까?' 근데 저는 취직을 하더라도 그냥 돈만 주는 직업을 갖고 싶지는 않았어요 제가 원하는 무대 디자인을 하기에 최대로 가까운 그런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었고 제 전공이었던 인테리어 디자인을 살려서 '그래, 그러면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자' '그러면 돈은 최대로 많이 주는 곳에 가야 한다' 그러면 대기업이잖아요? 그 당시에는 대기업들이 지금도 그렇지만 가장 돈을 많이 줬을 때니까 그러면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서 대기업에서 일을 하자로 결심을 굳혔습니다 근데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진짜 제가 정말 열심히 준비를 하니까 대기업에 합격을 해버렸어요 그것도 국내 굴지 대기업에 그래서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는 멋진 직함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척하고 있는 게 전데요 그때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열심히 회사에서 일을 했습니다 근데 일을 하니까 막상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편해지는 시점이 오더라구요 근데 그 편해진 시점이 오니까 꿈이고 뭐고 회사를 관두기가 싫은 거예요 이제 이 자리에서 안주를 하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드는데 그때 제가 들었던 생각이 내가 사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내 꿈이 있었기 때문에 그걸 쫒아가려다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서 편하다고 관두면은 나는 영원히 내 꿈을 잡아볼 기회는 없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다시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준비를 하기 시작했는데 저같은 경우는 미술을 전공했고 또 무대 디자인은 디자인과이기 때문에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됐어요 그래서 회사에서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은 저는 무조건 방문을 걸어 잠그고선 부모님 몰래 포트폴리오를 준비했습니다 그 생활을 반복을 하다가 유학 준비도 하고 이러다가 어느 날 드디어 USC에서 제가 합격통지서를 글씨가 잘 안 보이지만 합격 통지서가 이렇게 날라옵니다 그래서 이거를 받고선 이때 부모님께 저는 "저를 미국에 보내주세요" 가 아닌 "자 이제 저는 가겠습니다" 이렇게 통보를 했습니다 근데 의외로 저희 아버지가 제 힘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이뤄낸 걸 보셔서 그런지 반대를 안하시고 "그래, 그럼 네가 정말 가고 싶으면 가거라" 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드디어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근데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서양에서는 18세가 지나면은 부모님한테서 독립을 하잖아요 그래서 대부분의 서양인들은 학생 신분일 때 이미 학자 대금을 받아서 대출을 받아서 그 친구들이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그 친구들이 그거를 평생 갚아 가면서 그렇게 학교를 다닙니다 그리고 나서는 부모님한테 뭔가 도움을 청하는 걸 굉장히 창피해하는데 사실 저희는 어떤가요? 부모님이 학비 대주시는 거 당연하구요 심지어는 30대, 40대가 되서도 만약에 시집 장가를 안 가신 분들은 생활비 한푼 안보태시면서 부모님 옆에 딱 붙어 계시잖아요, 그죠? 저희가 사실 그런데 저는 어찌보면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제가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서 이렇게 독립을 하게 됐는데 사실은 저도 미국 유학가기 전에 부모님한테 한 가지 부탁을 드렸었어요 제가 다른 건 모르겠는데 딱 일 년만 도와주십사 왜냐면 제가 자리를 잡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했는데 부모님께서 "그러마" 하셨었었어요 근데 저에게는 그 일 년이라는 시간도 사실은 굉장히 큰 사치였던게 미국 간 지 몇 달만에 바로 IMF 가 터져갖고요 그때 환율이 정말 높게 치솟아서 부모님이 바로 연락이 오셨어요 "너한테 도저히 지원을 해 줄 수가 없다 지금" 정말 10년이란 세월을 싸워갖고 저는 힘겹게 갔는데 이렇게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되는 건가 망연자실 할 때 제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수님을 찾아갔는데 저희 교수님이 그러시더라구요 너 장학생이었다고 몰랐냐구 (박수) 감사합니다 그래서 조금 허무하기도 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그 장학금을 받고 어떻게 기적적으로 미국에 제가 머물게 됐어요 근데 학비는 해결됐지만 의식주가 해결돼야 되잖아요? 그래서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학교 내에서 할 수 있는 직업들을 구하러 다녔는데 제가 그래서 그때 조교도 하게 됐고요 또 USC 내에 있는 소품실에서도 일을 하게 됐습니다 그때 이런 소품실에서 일을 했어요 꼭 귀신 나올 것 같은 소품실인데 이런 곳에서 제가 일을 하면서 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뭔가에 미친다는 게 뭔지 아십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물 불 가리지 않는다 뭐 그런 것이죠? 여러분들 뭔가에 미쳐 본 적 있으세요? 끄덕끄덕 하시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이 '그런 미친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 라는 표정으로 절 쳐다보고 계신데 아니면 '나는 뭔가에 절실히 원해서 미쳐본 적이 없고' '글쎄 그런 게 과연 나한테 일어날 수 있을까' 이렇게 단정을 짓고 계신 분들도 있을 수 있는 거 같은데 지금 여기 앉아 계신 분들 최소한 반 이상이 남자분들 같으신데요 남자분들 좋아하시는 여자분 생기시면 대부분들 다 미치십니다 그렇지 않으세요? 두 시간 넘는 거리를 데려다 주고 데려오고 또 데려다 주고 이런거 미치지 않으면 못하는 짓이예요 근데 그런 짓 열심히 하시는 분들 또 게임에 미치신 분들도 계시지 않나요? 아니면 음주 가무에 미치셨다던가 아니면 현재에 미쳐계신 분들 뭐 다 좋습니다 그 말은 저희 안에는 뭔가에 미칠 수 있는 그런 잠재력이 다 있다는 소리입니다 근데 이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이 잠재력 뭔가에 미친다는 잠재력을 왜 일이나 공부에는 적용할 수가 없는 걸까요? 만약에 저희가 이런 엄청난 잠재력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발견을 해서 거기다가 적용을 한다면 어떨까요? 저에게도 제가 무대 디자인을 하면서 '나 정말 무대디자인에 미쳤었구나'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USC 대학원 시절에 대학원생이면요, 의무적으로 매 학기 세트를 디자인을 해줘야 돼요 디자인해 준 이 세트에 여러 과들이 굉장히 많이 의존을 하게 되는데 배우들은 거기 무대에 서게 되고 의상, 조명 다 그래서 굉장히 중요한 세트입니다 이 큰 책임에, 또 대학원 공부에 저는 영어 공부도 해야 됐죠 여기에 또 제가 조교로 일하면서 미국 학생들에게 페인팅을 가르쳐 줬었어요 그리고 또 그 다음에 소품실에서 일을 하면서 이렇게 여러가지 제가 학교에서 관여를 하다 보니까 한 대 여섯 개의 타이틀을 가지고선 굉장히 열심히 일을 했었는데 제가 있는 곳은 연극 무대 디자인이었는데 USC 시네마 쪽에서 항상 학생들이 영화 미술을 좀 디자인해달라는 제안이 심심치 않게 들어왔었어요 근데 대부분 제 친구들, 제 동료들은 다 그걸 안 하겠다고 했어요 왜냐면 너무 부담스러우니까 근데 저는 할리우드가 궁금했고 영화미술도 궁금했고 이 궁금한 마음에 그 미팅들을 나갔었는데 한 작품을 하나 해줬더니 그 다음에 이게 소문이 나가지고 학생 작품이 봇물처럼 들어오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학생 작품은 대부분이 무료봉사입니다 돈도 못 받지만 심지어는 제 돈이 들어가요 왜냐면은 미술을 하려면 한 영화의 미술을 해주려면 제가 막 돌아다니면서 여러가지를 찾으러 다녀야 되는데 그 차비, 기름 값 제 돈이구요 그 돌아다니면서 먹는 밥 값 그것도 제 돈입니다 이렇게 사비가 들어가면서 해야되는 일들인데 막 제안이 들어왔을 때 저는 이미 학교에서 하고 있는 책임이 막중했기 때문에 사실은 거절해야 되는 게 맞는데 일단 미팅은 나갑니다 근데 미팅을 나가면서 운전을 하면서 저는 차 속에서 연습을 했어요 '절대 한다고 하지 말아야지' '어떻게 거절을 할까' 거절 하는 방법까지 다 생각해 놓고 나갔어요 근데 나가 가지고 미팅이 끝나고 돌아올 때 쯤이면 이미 하겠다 그러고 돌아오고 있는 거예요 근데 그런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렇게 운전을 하면서 '너 미쳤구나! 이 많은 걸 네가 어떻게 하려고 하니? 너 미쳤구나!' 근데요, 저 맞습니다 미쳤었습니다 제가 했던, 이게 대학원때 했던 연극쇼인데요 이 많은 일을 하면서요 또 이 영화들, 이게 타이틀 걸린 것들은 학생 작품인데요 이 학생 작품들을 열심히 해줬습니다 이것 말고도 더 많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지금 이 정도를 챙겨왔는데 근데 이렇게 뭔가에 미치지 않으면요 이렇게 힘든 짓들을 절대 하지 못합니다 지금 이렇게 돌이켜서 생각해 보면은 돈도 안되고 제가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 가난한 유학생이었는데 어쩜 그렇게 돈도 안되는 일을 많이 했는지 참 신기해요 근데 사람이 뭔가에 미치면은 그렇게 됩니다 누가 옆에서 아무런 말을 안 해도 혼자 알아서 밤새게 되요 그리고 밤새게 되고, 몸은 피곤해 죽겠는데 너무너무 행복한 거예요 제가 할리우드에서 여러 사람들하고 일을 해봤는데요 그 중에서는 여러가지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원양어선을 타다가 온 사람도 있고요 어떤 사람은 뉴욕에서 경찰관을 하다 갑자기 미술부로 들어온 사람도 있고 그래요 근데 그 중에 하나가, 저랑 베스트 프랜드가 할리우드 페인터인데 이 친구가 저한테 자기가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일을 하게 됐는지 그 얘기를 해줬었습니다 이 사람은 18살 때, 자기가 아무런 학력도 없고 연고지도 없는데 할리우드에서 너무 일이 하고 싶었대요 그래서 얘가 선택한 방법은 뭐였냐면 파라마운트사 앞에 가서 그냥 이러고 서 있는 거예요 매일 출근 도장 찍으면서 똑같은 자리에 똑같이 서 있었대요 근데 계속 똑같은 자리에 똑같이 서 있다 보니까 이 사람하고도 얘기하고 저 사람하고도 얘기하고 이러다 보니까 어느 날 아주 조그만 기회가 이 친구한테 주어진 거예요 근데 그 조그만 기회를 잡아서 지금 32년 째 할리우드에서 굉장히 유명한 페인터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뭔가 기회를 잡는다는 것 또 거기서 경험을 쌓는다는 것 내가 원하는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이렇게 직접 몸으로 부딪쳤을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근데 제가 디지털 세대, 젊은 세대들한테 조금 아쉬운 점은 여러분들이 인터넷이 너무 발달한 세상에서 살다 보니까 인터넷에서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다 얻어요 내가 관심있는 분야까지도 그걸로 먼저 검색을 해 보십니다 그러다 보니까 간접경험을 굉장히 많이 하게 되는데 어느 순간 이 간접경험이 쌓이면 이게 마치 내가 이걸 경험한 듯한 그렇게 착각을 하는 순간이 와요 이러다 보면은 지레 겁먹고선 "나 이거 포기해야 겠다" 포기할 수도 있고 아니면 "여긴 나랑 맞아, 안 맞아" 직접 해 보지도 않았는데 간접 경험으로 자기의 적성 테스트까지 다 끝낼 수가 있어요 근데 내가 뭔가 좋아하는 일에 도전을 한다는 건요 "야 너 미쳤냐 " 이런 소리 들을 정도로 무모할 때도 있고 부딪치고 깨지고 피가 터져나서 "야! 이 미친놈아 그만 좀 해라" 이런 소리 들으면서도 너무 좋아서, 너무 행복해서 난 이걸 계속하고 싶다고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오늘부터 뭔가 좋아하는 일에 미쳐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미쳐서 원하는 것을 꼭 쟁취하는 그런 삶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유정이었습니다 한글자막 : 윤형렬 (joshhl07@navercom) 한글검수 : 최두옥 (dooook@gmail

com)

17년 만에 영화감독 되기 | 강윤성 영화 ‘범죄도시’ 감독 | 강의 강연 영상 듣기 | 세바시 867회

(박수와 함성) 안녕하세요? 범죄도시를 연출한 강윤성입니다 반갑습니다 (박수) 영화 많이 보셨나요? 근데? (네) 너무 감사합니다 여러분들 성원 덕분에 <범죄도시>가 역대 영화 청불 3위를 기록했습니다 (박수와 환호) 제가 오늘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간 제가 어떻게 해서 영화감독이 됐는지에 대해 가지고 말씀드리려고 나왔습니다 제가 영화 감독이 되겠다라고 결심을 한 게 군대에 있었을 때였고요 휴가를 나와서 집에서 비디오 테이프를 보는데 <저수지의 개들> 이라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를 봤습니다 그 전에도 영화를 굉장히 좋아해서 많은 영화들을 봤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까 제가 생각했던 이야기 방식과 캐릭터와는 완전히 달랐었거든요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 앞으로 제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하는 감독이 되자 라고 마음을 먹게 되었고요 그러고 난 다음에 군 제대를 하고 복학을 해서 이제 제가 먼저 해야 될 일이 제 성격을 좀 바꾸는 거였는데요 제가 굉장히 좀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도 좀 얘기하는 것도 주저하고 수업시간에 손을 들고 얘기하는 것도 많이 주저하는 스타일이었는데 그런 성격들을 조금씩 조금씩 바꿔나가고 일단은 제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서는 글을 써볼 줄 알아야 됐었습니다 그래서 글쓰는 작업으로 당시가 94년도였었는데 컴퓨터 영상 편집 프로그램이라는 '프리미어'란 프로그램이 막 나왔을 때였거든요 이 프로그램이 굉장히 신기하더라고요 컴퓨터로 영상 편집 하고 하는 것들이 그래서 관련 자료들을 좀 모아서 내용들을 좀 정리했고 그리고 이제 대학 4학년 때 쯤 돼서 제가 단편영화를 처음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때 이 단편영화 편집을 '프리미어'라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했는데 그것에 관련된 내용들을 다 정리해가지고 책으로 한 권 출간하게 됐는데 그게 <컴퓨터 영상 편집>이라는 제 첫 책이었죠 이게 대학교 4학년 때였습니다 이 책을 쓰고 나니까 제가 원래 이과생이어가지고 글쓰는 거나 이런 것들에 대해가지고 자신도 없고 그리고 능력도 없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조금 자신이 붙더라고요 그래서 대학 졸업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처음으로 이제 시나리오를 쓰게 됐습니다 근데 시나리오 수업을 들었는데 시나리오 선생님이 굉장히 무서웠어요 그리고 영어로 시나리오를 써야 되는 거였는데 미국에 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한글로도 시나리오를 써본 적이 없었는데 영어로 시나리오를 쓴다라는 건 불가능했었거든요 근데 선생님이 굉장히 터프하셔가지고 저희가 한 달 반 안에 장편 시나리오 100장을 쓰는 그런 수업이었는데요 그 백 장을 쓰는 동안에 책 두 권을 읽고 시험까지도 봤었어요 그러니까 한 수업만 그렇게 빡세게 진행이 되었는데 그 선생님이 얼마나 터프하시냐면은 숙제를 해가지고 온 시나리오를 본인 맘에 들지 않으면 학생 눈앞에서 팍팍 찢어요 찢어가지고 얼굴에 확 뿌리고 이러시거든요 그래서 저도 이제 좀 오기가 생겨가지고 한 200단어, 300단어 밖에 모르는데 그 단어 안에서 그냥 팍 썼습니다 써가지고 그렇게 수업에 따라서 한 달 반 안에 시나리오를 마무리를 짓고 나니까 굉장히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앞으로 다른 시나리오를 쓴다 하더라도 내가 완성을 할 수 있겠다라는 그런 자신감이 생겨가지고 시나리오 수업을 듣게 된 게 저한테는 굉장히 큰 힘이 됐었죠 그리고 제가 해야될 일이 영화 감독이 되려면 또 피칭이라는 걸 했어야 됐거든요 상대방한테 제가 쓰고 있는 이야기에 대해 설득시키고 이해시키는 그런 것을 '피칭'이라고 하는데 피칭을 하기 위해서는 연습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제가 말을 논리적으로 잘 하거나 빨리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항상 술자리나 밥을 먹거나 할 때에는 앞에 있는 상대방이 투자자다 배우다, 제작사다 라고 상상하고 나한테 주어진 시간은 1분이다, 2분이다 5분이다 이런 식으로 해가지고 계속 연습을 하는 거였습니다 내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영화가 주인공이 어떻게 돼가지고 어떻게 돼서 어떻게 된 이야기다 라는 것을 계속 연습을 했었죠 그게 연출자로서는 굉장히 필요로 하는 일이었었고요 그거를 하다 보니까 이야기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에 대해서 자신감이 많이 붙었었죠 그렇게 20대 때는 열심히 시나리오를 쓰고 그리고 피칭 연습도 하고 하면서 준비를 해서 제가 서른 살에 운 좋게 감독 데뷔 기회를 잡았습니다 미국에 있었을 때였었는데 한국에 있는 제작사랑 계약이 돼가지고요 한국에 들어오게 됐고 그때 투자와 배우까지 다 결정이 돼가지고 영화를 준비를 했는데 그 영화가 일 년 만에 엎어지게 됐었죠 그래서 서른 살 이후부터는 여러 가지 일들을 했습니다 30대 때에는 뭐 방송 외주 일도 하고 학교 강의도 나가고 또 뭐 홍보 영상도 만들고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면서 그 사이에서 계속 꿈을 잃지 않고 영화 시나리오를 계속 썼습니다 계속 썼는데 당시에는 굉장히 열심히 시나리오 작업을 하다보니까 이야기 구성력은 되게 좋아졌어요 근데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이야기 제가 쓰던 이야기들은 제가 어디선가 본 내용들을 가지고 와서 짜깁기 하는 형식이 됐었죠 근데 열심히 쓰다보니까 구성력이 좋아서 조금만 틀어도 새로운 이야기처럼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이 시나리오가 제작사한테는 굉장히 먹혔습니다 그래서 제작사한테 시나리오 계약금이나 진행비 조금씩 받으면서 그렇게 생활을 했는데 그러면서도 계속 영화가 엎어지니까 한계가 오더라고요 그래서 마흔 살 40대가 되고 난 다음에는 가장 중요한 게 생계였습니다 영화로 벌어들인 돈은 너무 한정됐었고 돈도 이제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게 아니고 들쑥 날쑥 들어오게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안정적인 수입이 생기기 위해가지고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근데 그 장사를 저희가 처음 시작한 게 여자 구둣 가게를 시작을 했는데 장사가 너무 잘됐어요 잘돼서 제가 영화로 일 년 치 버는 거를 한두 달이면 벌어버리더라고요 근데 일단은 30대 때에는 계속 제가 가장이고 영화로서 어떻게 돼든 먹고 살아야 되고 해서 정말 시나리오를 열심히 카페에 앉아가지고 8시간씩 엉덩이 붙여놓고 썼는데 막상 40대 때 돼가지고 가게를 해가지고 어느 정도 조금 생활에 여유가 생기니까 그때도 마찬가지로 집사람은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고 물건을 팔고 저는 그 주변에 나가가지고 카페에서 또 글을 썼는데 조금 여유가 생기니까 과거에 제가 썼던 글들이 보이더라고요 근데 그 글들 내용이 다 가짜 같았던 거예요 진정성도 없고 어디선가 본 듯하고 조금만 틀은 거였고 그런 것들이 그때 가서 보이기 시작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제가 시작한 게 막연하게 엉덩이만 무겁게 의자에 앉아가지고 글을 쓰는 게 좋은 거는 아니다 생동감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취재를 해야된다 해서 제가 쓰는 이야기에 관련돼 있는 사람들을 만나가지고 취재를 시작을 했습니다 취재를 하다보니까 정말 머릿속에서만 상상할 수 없는 얘기들이 되게 많이 나오더라고요 그리고 실제는 이런 것들이구나 라는 것들을 많이 알게 돼고 그런 것들을 이제 글에 반영하니까 글 내용이 굉장히 생동감있게 변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렇게 계속 작업하다가 결국 저희 집사람이 더이상 장사하기가 힘들다 저희가 장사는 잘 됐었는데요 조그만 공간 안에 집사람이 계속 갇혀 있다보니까 너무 힘들어 했어요 그래서 저희가 장사를 6년을 했는데 더이상 하기가 힘들 것 같다 해가지고 그 가게를 접고 접을 때가 제가 <범죄도시>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범죄도시> 진행을 해보니까 잘 될 것 같더라고요 금방 영화 들어갈 것 같아가지고 그런데 1년이 지나도 또 투자를 못 받는 상황이 되고 <범죄도시>가 총 그렇게 3년을 시간을 보냈는데 투자를 못 받게 되고 돈도 한 푼도 못 번 상태가 되고 빚은 한 5천 만 원 정도 지고 더이상은 투자자들한테 전부 다 거부를 당해가지고 더이상 진행이 될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그때까지 영화를 준비를 한 게 16년 정도가 됐었는데 더이상은 영화를 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집사람이랑 같이 아무 대책없이 빚도 많았는데 스페인 여행을 갔어요 스페인 여행을 가서 일단 저도 그간 오랫동안 영화 한 것에 대해가지고 마음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고 또 마침 거기에 스페인에 막내 이모가 유학을 하고 계셔서 겸사겸사해서 갔는데 거기 갔더니 막내 이모가 본인이 잘 가는 가게라고 하면서 올리브 가게를 데려갔는데 올리브가 너무 맛있더라고요 한국에서 먹었던 올리브는 좀 짠데 거기 올리브는 하나도 안 짜고 너무 맛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래 이 올리브를 수입해가지고 장사나 하자 (웃음) 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때 마침 저희 제작사 대표가 카톡으로 감독님 투자됐어요 이렇게 온 거예요 사실 그랬던 적이 몇 번 있어가지고 약간 좀 반신반의하면서 그러면 투자사가 어디냐 라고 물어봤더니 잘 모르는 회사 신생회사더라고요 하, 이것 좀 또 불안한데 제가 촬영 직전에서 두 번 정도를 영화가 엎어진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불안한 마음에 한국에 들어와가지고 막상 진행 상황을 봤더니 잘 진행이 되더라고요 그래도 이거 조금 이상한데 보통 이제 상업 영화 저희 정도 사이즈가 되는 영화에서는 좀 유명한 투자사한테 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인정된 투자사한테 돈을 받지 않으면은 중간에서 엎어지는 경우가 많아가지고 그런 면에서 좀 많이 불안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정말 잘 진행이 됐습니다 그리고 촬영 들어가기 2주 전에 고사를 지내는데 그때 확 확신이 오더라고요 아, 우리 영화 진짜 들어가는구나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영화를 찍었습니다 영화를 찍고 영화가 너무나 잘 되고 1년 전만 해도 사실 영화를 그만두려고 했었는데 사실 영화 한 편만 만든 것만으로도 되게 감정이 북받치고 행복했었는데 또 많은 분들한테 사랑까지도 이렇게 받게 되니까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근데 제가 오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인생에 있어서 저처럼 이렇게 한 우물만 파고 계속 갈 수도 있겠지만은 그게 딱히 좋은 것 같지만은 않습니다 저는 어떻게보면 약간 미련하게 하나만 너무 바라보고 17년의 시간이 지났는데 제가 어느 자리에 가서 여러분도 저처럼 이렇게 하시다보면은 된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지가 않아요 예전에도 그런 얘기들을 많이 들었거든요 성공한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하다보면은 결국 거기에서 성공을 이룬다라고 얘기들을 많이 하시는데 저도 준비를 하는 동안에 그게 확실히 보장된 거라고만은 생각되지가 않았습니다 만약에 제가 스페인에 가가지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은 저는 아마 영화를 오랫동안 준비만 하다 끝냈을 거예요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런 겁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가지고 여러분의 그 드라마를 너무 한쪽으로만 만들려고 하지는 마세요 열심히 하시다가 만약에 다른 드라마로도 만들 수가 있는 거고 어차피 여러분이 주인공으로서 나가시는 건데 저처럼 한 작품만 만들려고 하지 마시고 여러분들 하시다가 열심히 하시다가 정말 힘들고 지치고 이럴 때에는 과감하게 포기할 줄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드라마를 또 시작을 하세요 거기의 주인공은 어차피 또 여러분들이시고 그 안에서 또 조력자와 스승과 또 반대세력 영화의 요소들 같이 그런 스토리들 같이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겁니다 또 다른 드라마로 여러분들이 또 대박을 내시면 돼요 그래서 정말 한 우물만 판다 한 길만 간다라는 게 저는 정답은 아닌 것 같고요 정작 만약에 그거를 정말로 요구하시고 생각하신다면은 할 때까지 해보시고 그래도 정말 안된다 싶으면 포기할 줄도 아는 게 용기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쨌든 저는 사실 정말 운 좋게 영화가 잘 돼가지고 다음 영화를 할 수 있게 됐고 이게 어떻게 보면 제 영화 인생에 있어서는 이제 막 처음 서막이 열리는 상황이거든요 앞으로도 저는 열심히 영화를 만들면서 나머지 드라마를 그려내겠습니다 여러분들도 건승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한글자막 : 박은지(loveholic5983@hanmailnet) 한글검수 : 정가영 (ycsylvias@gmail

com)